오늘도 적멸(寂滅) 향해 묵묵히 간다

 

 삽화=손정은 작가
 삽화=손정은 작가

성찰하고 또 성찰한 뒤에 

신체적 정신적 행위해야

# 아라한과를 증득하기 위한 파악

왕이 물었다. “존자 나가세나여! 당신은 ‘수행자는 대나무의 성질에서 한 가지를 배워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그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존자가 답했다. “대왕이시여! 예를 들어 대나무는 바람이 부는 쪽으로 따르며, 다른 쪽을 따르지 않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수행자는 세존께서 설하신 가르침에 수순하고 계율을 따르며 죄와 허물이 없는 행위에서 몸을 확립하고, 그로써 수행자의 본분을 탐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 한 가지입니다. 대왕이시여! 또한 장로 라훌라는 이런 시를 설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언제나 수순하며, 계율을 따르고 죄와 허물없는 행위에 몸을 확립하여 그로써 나는 사악한 생존을 건너뛰었네!’라고 말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존자시여!”.

라훌라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외아들로, 세존께서 출가하시던 바로 그날에 태어났다고 한다.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증득하신 지 2~3년 뒤에 부친 정반왕의 간청으로 고향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셨는데, 한때 싯달타의 부인이었던 야소다라는 라훌라를 세존께 보내 유산의 승계를 요청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사리불 존자에게 라훌라를 출가하게 하시면서, “다시는 세상에 태어나지 말라(<숫타니파타. 339>)”라는 간곡한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세존께서 라훌라를 가르치신 일화가 나오는 최초의 경은 <맛지마 니까야>의 ‘암발랏티까 라훌라 교계경’이다. 이때 라훌라는 7살이었다고 하는데, 여러 사람에게 장난을 치고 거짓말하며 말썽을 부리는데도 감히 이를 제지하고 다스리려 하는 스님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세존께서는 대야의 물과 거울의 쓰임새로 라훌라를 훈계하신다.

어느 날, 세존께서는 발 씻은 대야의 물을 조금 남겨 놓으시고 시중들고 있던 라훌라에게, “너는 물그릇에 물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을 보았는가?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자에게 수행자의 덕성은 이 물과 같이 적다” 또 세존께서는 조금 남아 있던 물마저 버리시고,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에게 수행자의 덕성은 이와 같이 버려진다.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데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는 어떠한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과도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라훌라여!, ‘나는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새겨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또 세존께서는, “라훌라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울은 어떠한 쓰임새를 갖고 있느냐?”, “성찰을 그 쓰임새로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 성찰하고 또 성찰한 뒤에 신체적으로 행위하고, 성찰하고 또 성찰한 뒤에 언어적으로 행위하고, 성찰하고 또 성찰한 뒤에 정신적으로 행위해야 한다. 만약 네가 성찰해서, ‘행위가 착하고 건전한 것들이어서 그 결과는 즐거움이고 그 과보도 즐거움이다’라고 안다면, 그와 같은 행위를 계속해도 좋지만, ‘행위가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어서 그 결과는 괴로움이고 그 과보도 괴로움이다’라고 안다면, 너는 그와 같은 행위를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수행자의 덕성이라는 물을 채우기 위해, 성찰이라는 거울을 가지고, 청량하게, 적멸(寂滅)을 향해 오늘도 묵묵히 간다.

[불교신문 3812호/2024년3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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