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들의 템플스테이] 포항 보경사

조명호 씨, 혜공스님, 이용근 씨, 김용훈 씨, 남영우 씨보경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어르신들이 내연산 상생폭포 앞에서 쉬고 있다. 왼쪽부터  조명호 씨, 혜공스님, 이용근 씨,  김용훈 씨, 남영우 씨.
조명호 씨, 혜공스님, 이용근 씨, 김용훈 씨, 남영우 씨보경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어르신들이 내연산 상생폭포 앞에서 쉬고 있다. 왼쪽부터  조명호 씨, 혜공스님, 이용근 씨,  김용훈 씨, 남영우 씨.

불교에선 사람을 가르칠 때 거울의 비유를 쓴다. 마음은 일종의 거울이고 세상은 그 거울에 나타난 형상이다. 거울에 먼지가 묻어 있으면 세상이 더러워 보이고, 거울이 깨졌으면 삶도 파괴된다. 거울을 부지런히 닦는 일도 중요하고, 모든 것은 실체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헛것임을 깨닫는 일도 중요하다. 명경(明鏡)은 티 하나 없이 맑은 거울을 뜻하는 불교의 언어다. 우리 모두가 본래 간직하고 있는 부처님의 성품, 불성(佛性)을 가리킨다. 보경(寶鏡)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마음이 보배라는 것은 그만큼 마음먹기가 세상살이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생각이 곧 현실이고 어떤 생각으로 사느냐에 따라 현실은 무너지거나 달라진다. 보경사(寶鏡寺)에 가니까 이런 생각이 좀 더 또렷해졌다.

사찰에서 다진 ‘62년 우정

보경사(주지 탄원스님)는 포항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간다. 서울역에서 포항역까지 KTX2시간30분이 소요된다. 포항역에서 5000번 버스를 타면 40분 이상 달려야 한다. 종점이 보경사다. 운행노선이 시골길이고 빈루해서인지 물리적 거리보다 한결 지루하게 느껴진다. 길이의 고됨에 비해 공간의 고됨은 헐거운 편이다. 보경사는 평지에 있다. 물론 뒤편으로는 큼지막하고 험한 내연산이 버티고 서 있다. 경북 내륙에서 동해안으로 내달리는 산들은 풍화에 강한 화산암 기반이어서 곳곳이 깎아지른 절벽과 깊게 패인 계곡이다. 내연산은 12폭포로 유명하다. 상생폭포부터 여러 폭포들을 만날 수 있다. 평일인 데도 아침부터 등산객이 많다. 사람이 많으니 가게도 많다. 사하촌이 제법 발달했고 이런저런 식당에 사우나도 있다. 산사인 데도 인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경내로 들어서니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항아리들을 모아 웃는 얼굴들을 만들어놓았다. 전각마다 칠해진 신선하고 유쾌한 벽화들 역시 용기를 준다. 달팽이는 느리지만 어쨌든 전진하고 있단다.

312일 화요일이었고 12일 템플스테이에 4명이 참가했다. 4명이지만 한 팀이다. 1955년생 초등학교 동창들로 올해 세는나이로 일흔을 맞이한 어른들이다. 이른바 ‘100세 시대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한다. 다들 이미 손주들까지 본 할아버지들이지만 노인이라고 칭하기엔 괜히 미안하다. 그래서 '아저씨'들은 이제는 사는 곳이 제각각이지만 같이 등산도 하고 저녁도 먹는다. 짬 날 때마다 얼굴 보고 가끔 번개팅도 하면서 60년이 넘어가는 우정을 소중히 이어간다. 대다수의 한국 남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욕을 퍼부어야 더 끈끈해지는 이상한 습성을 갖고 있다. 이분들도 외관만 늙었지 마음은 어느새 철부지 때로 돌아가 있다. 웃으면서 핀잔을 주고 즐겁게 타박을 받아낸다. 이번엔 템플스테이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적지 않느냐는 말이 은근히 아렸다. 고즈넉한 사찰에서 거울을 한번 닦아보기로 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살아냈다

지도법사는 혜공스님이다. 한 달 전 광주 증심사 요가 템플스테이에서 봤는데 여기서 또 봤다. 31일부터 보경사에서 일하고 있다. 전라도 사투리와 중요한 불교용어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발음하는 말투도 똑같다. 참가자들은 스님의 안내에 따라 보경사 경내를 돌며 불교를 조금씩 배웠다. 혜공스님은 인불(人佛) 사상을 강조했고 오체투지는 불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을 향한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엎드려 머리를 바닥에 대는 행위는 당신의 가장 낮은 발밑을 섬기겠다는 것이지요.” 인류 최고의 스승인 부처님에겐 감히 소원을 빌지 않는 것이라며 좌우의 지장보살과 호법신장에게 비는 것이라는 팁도 주었다. “원래 대통령에게 부탁할 것이 있으면 대통령이 아니라 비서실장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며. 정치에 관심이 지대한 중장년들을 위한 맞춤형 예시였다. 그래도 중생은 목이 타고 부처님이 늘 그립다. 부처님 앞에 삼배도 하고 생전 처음 불전에 지폐도 넣어보았다. “우리 집 보살님이 최대한 많이 넣으라고 해서.” 해는 저물고 번뇌도 내려앉았다.

저녁공양을 마친 뒤 차담 시간. 오가는 대화는 평범했지만 묵직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없고 아픔 없는 인생이 없는 법이다. 참가자들의 칠십 평생도 충분히 고단했다. 사글세부터 신혼살림을 시작해 어쨌든 여기까지 왔다. 꿋꿋이 자식들 장성시켜 그들이 부모가 되는 것까지 이뤄냈다. “부모를 부양한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들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는 점은 억울하다. 반면 우린 취업은 쉬웠는데 생활이 어려웠고 요즘 아이들은 부모들 덕분에 생활은 쉬운데 취업은 어렵다며 그 억울함을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한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아들딸 자랑하고 배우자를 무서워하고 정쟁을 안타까워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동안 찻잔은 서서히 식는다. 물론 식은 죽은 맛이 덜하지만 먹기는 편한 법이다. “이 나이가 되니 물질과 행복은 별로 상관이 없습디다. 정말이에요.” “이렇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감사할 뿐입니다.” 청춘과 맞바꿔 얻은 지혜가 감동적이다.  질박한 거울 같은 어르신들은 내연산 폭포를 구경하면서 일정을 마쳤다. 나이가 들면서 외피는 필연적으로 줄어든다. 키는 작아지고 피부는 쪼그라든다. 어쩔 수 없이 내면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내연(內延). 안으로 늘려가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인가.

보경사 템플스테이

With you, with me(12일 체험형)

오후 3시부터 다음날 12시까지. 보경사 탐방, 저녁공양, 타종체험, 저녁예불, 스님과의 차담,

새벽예불, 아침공양, 내연산 12폭포 산행

찾아가는 길

서울 ktx(포항역) 5000번 버스 보경사

대구포항간 고속국도 7번 국도 영덕 방향 송라면 보경사

상주영덕간 고속국도 영덕 포항 방면 송라면 보경사

문의: (054)262-1804

예약: www.templest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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